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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밥에 담긴 그림전

    • 작성자운영자
    • 등록일06.04.27
    • 조회수3,514
  • 펌) 전라도닷컴

    국물 튀어도 괜찮다요∼
    말바우시장 ‘국밥에 담긴 그림’전 /이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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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뉴작품’을 뒤로 하고 홍도식당 주인아주머니 천외순씨가 순대를 썰고 있다. 오늘만큼은 그도 갤러리 주인장.
    ⓒ 김태성 기자

    간혹 그림에 국밥 국물이 튈지도 모른다. 그러나 괜찮단다. 광주 말바우시장 거리로 뛰어든 작품들은 “오메, 나도 그리겄네”와 어쩌다 튈지 모르는 국물까지도 생생한 품평으로 환영한다. 난전의 할머니도 한 잔 걸친 아저씨도 평론가가 되는 ‘삶 속의 예술’. 작품을 그린 이들이 꿈꾸는 것이다.

    외지인도 한번 들으면 그 이름을 까먹지 않는 ‘말바우시장’. 그 골목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4월14일부터 5월14일까지 열리는 ‘국밥에 담긴 그림’전이다. 장소는 시장 내 국밥골목 옹기종기 이웃한 대원순대, 대촌국밥, 홍도식당, 담양식당 등 네 곳. 북구문화의집이 기획하고, 두 해 전부터 담양장터에서 국밥집 그림전을 열었던 화가들도 다수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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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밥에 담긴 그림'전 플래카드가 내걸린 대촌국밥집.
    ⓒ 김태성 기자

    대원순대, 대촌국밥, 홍도식당, 담양식당이 갤러리로
    “말바우시장은 인근 대형시장이 장옥으로 변하면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상인이나 간혹 푸성귀를 파는 이들이 난장을 벌여온 곳입니다. 이곳은 경쟁보다 서로를 보듬으려는 정신이 녹아있는 곳이며, 그 중심에 국밥골목이 있습니다.”
    북구문화의집이 말바우시장에 주목한 이유다. 북구문화의집은 작년에 ‘말바우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벌여 아이들과 함께 말바우시장의 역사를 탐구했다. 이번 ‘국밥에 담긴 그림’전은 ‘말바우아케이드’에 이은 현재의 탐구인 셈이다.

    광주 지역 미술가들이 말바우시장에서 얻은 모습과 기운을 한껏 담아냈다. 고재근, 권승찬, 문학열, 박문종, 박수만, 윤남웅씨는 그림과 입체작을 내걸었다. 광주대 사진학과 학생들인 신현진, 정회상, 주경미씨는 말바우시장 곳곳의 풍경을 렌즈에 담았다.
    기존 시장에서 밀려난 탓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을 서로 보듬어 주어야 한다는 상생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골목. 작품들도 여기에 슬며시 끼여들었다. 국밥집 메뉴판과 나란히 걸리기도 하고, 선술집 달력과 이웃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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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남웅씨의 그림들이 홍도식당 벽면의 선풍기, 광고판과 이웃하고 있다.
    ⓒ 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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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명 <자취방 근대사>
    대원순대집 거울은 권승찬씨의 캔버스. 그는 지난 시절 자취방의 빈 그릇들을 그렸다.
    ⓒ 북구문화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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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재근씨가 커피곽, 막걸리 병으로 만든 ‘21세기 풍속도’.
    ⓒ 북구문화의집

    대원순대집에 들어서면 고재근씨가 커피곽, 빈 담배갑, 막걸리 병 등을 조합해 벽면을 장식한 ‘21세기 풍속도’가 눈길을 끈다. 막걸리 병에 적힌 축(祝), 호(好). 바닥에는 1부터 365까지 숫자가 빼곡이 적혀있다. “이 집을 찾는 사람들 365일 날마다 좋은 날 되시라고요.”
    옆에 있는 작품은 고씨의 또 다른 입체작 ‘음양(陰陽)’이다. 남녀의 신체적 특징을 막걸리병을 자르고 붙여서 짓궂게 표현했다. “음양의 이치예요. 어때요 아줌마, 재밌죠?” 옆 탁자에 있던 아주머니, 작품 살피다 화들짝하더니 웃고 만다. “첨 볼 때는 뭔지 모르겄드만 다시 본께 딱 그것이요이. 오메에∼ 민망허요. 뜯어부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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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구문화의집

    지난 3월초 작가들은 국밥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에 사전워크숍을 열며 즉석에서 첫 그림을 그려냈다. 박문종씨가 그린 그림에는 담양, 혹은 곡성에서 왔을 법한 할머니의 난전과, 큼직한 푸성귀가 한 가득.
    ‘말바우의 봄은 할머니의 바구니와 이 씩씩한 사내들의 힘찬 붓꼴에서 피어났다’. 그림 한 켠에 글귀를 적어놓고, 농부 같은 화가들도 거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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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촌국밥집 벽면이 커다란 캔버스가 됐다. 박수만씨의 우드락 작품과 광주대 사진학과 학생
    들의 말바우시장 풍경사진들이 내걸렸다.
    ⓒ 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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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맛딸기 한사라 5000원’. 윤남웅씨가 말바우시장 좌판을 홍도식당 병풍에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 김태성 기자

    커피곽, 빈 담배갑, 막걸리 병도 재료 삼아  
    4월14일 국밥 골목에 드디어 작품들이 내걸린 날. 풍물패가 길놀이를 뛰고 김광철씨와 초이씨가 퍼포먼스를 벌이고, ‘갤러리’마다 골목에 막걸리 좌판을 내놓아 좁은 골목에 발디딜 틈이 없어졌다.
    박문종씨가 따라주는 막걸리에 길 가던 행인들도 목을 축였다. “요 비싼 술잉게 그냥 가시믄 안되고 그림도 보고 가셔야 합니다이.”

    말바우 골목이 이만큼 사람들로 북적이는 날은 오랜만인 듯. 좌판 리어카를 끄는 아저씨도 오랜만에 호기를 만났다.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김씨 옆에 리어카를 붙이고 “(주방용 비닐백)이백 장에 천원∼ 살라믄 사고 말라믄 말고∼” 길 가던 아주머니들은 ‘아리송’한 퍼포먼스보다 리어카 아저씨의 콧노래가 더 신난 모양이다. “진짜 퍼포먼스는 저 아저씨가 다  해불구만.” “퍼포먼승가 저것이 예술이라요” “근디 어쩐다고 저런당가. 어째서 우와기(웃옷)를 다 벗어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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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문종의 '차림표'
    ⓒ 북구문화의집  

    뒤이어 그림전 오픈을 알리는 테이프커팅. 국밥집 아줌마들, 아니 ‘갤러리 주인장’들도 서둘러 손을 씻고 나왔다. “다들 오셨소? 대원 손들어보씨오.” “여기요!” “대촌 손들어 보씨오.” “여기요!”
    이날 왁자지껄 오픈식은 고광연씨의 동영상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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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픈식의 테잎커팅  왼쪽부터 대촌국박주인, 작가윤남웅, 퍼포머 초이, 북구청시설사업소장, 지나가는 기사아저씨, 홍도식당, 작가 고재근, 대원순대, 작가 문학열, 담양식당
    ⓒ 북구문화의집

    담양장터 국밥집 그림전에 이어 이번 말바우시장 ‘국밥에 담긴 그림’전에도 참여한 화가 박수만씨. 그는 우드락 위에 배추, 호박, 무 같은 장터의 푸성귀와 익살스런 사람을 그린 작품 7점을 대촌국밥집에 내걸었다. “담양에서 열 때 농부 영감님들이 평론가가 되어 생생한 말씀들을 많이 주셨어요. 시장이 갖는 대중성과 정겨움, 솔직함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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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픈식때 열린 퍼포먼스 전경
    ⓒ 북구문화의집  

    ‘시장이 갖는 정겨움이 좋아’ 금세 거나해진 그의 느릿한 걸음 따라 홍도식당에 들어선다. 윤남웅씨의 그림들이 식당 벽면을 ‘인테리어했다’. ‘국밥’이라는 큰 메뉴에 윤씨의 낙관이 적힌 걸 보니 메뉴가 아니라 작품인가 보다. 벽면 선풍기 옆에 ‘돼지머리 종합세트’라는 그림이 걸려있다. 실제 그런 메뉴는 없겠지만 익살스런 그림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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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구문화의집

    작품인 척 아닌 척 천연덕스럽게 홍도식당에 눌러앉은 작품들처럼. 그도 손님들 한 가운데 작가인 척 아닌 척 앉아 있다. 박씨만큼 발그스레한 그가 즉석에서 엽서에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 준다.

    대촌식당 벽에 흑백사진들이 다닥다닥. 신현진씨가 담은 말바우시장 골목과 국밥집 주방 사진들이다. 그는 커다란 백화점과 마트에 밀린 재래시장의 흔적과 정감을 기억하고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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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구문화의집

    “근디 머덜라고 요런 디를 찍는다요. 요새 좋은 디가 널리고 널렸는디….” 그렇게 품평하는 이들을 국밥집 그림들은 밀어내지 않는다. 밀쳐내기보다 보듬어 안기, 혼자 도드라지기보다 함께 둘러앉기, 도시의 세련됨보다 느릿한 농촌의 옹골찬 기운…. 그 기운 한껏 품은 그림들이 국밥집에서 사람들을 기다린다. 그들의 입담을 받아들이며 ‘말바우그림’으로 불리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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